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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권총의 상징이 된 장인의 자존심 콜트 M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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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DIT GIANT 작성일19년01월02일 10:08 조회106회

    본문

    2018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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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무기]

    현대 권총의 상징이 된 장인의 자존심

    콜트 M1911

     

    by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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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어떤 한 분야의 기반을 닦거나 큰 업적을 세운 시조를 가리켜 ‘~의 아버지라 부른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 야동의 아버지 김본좌처럼. 무기의 역사에도 이런 중요한 기술 발전에 기여한 이들이 몇 있긴 한데, 애초에 군수 산업이란 국가 단위로 육성하는 것이라 누구 하나에게 아버지 호칭을 붙이기가 애매한 감이 있다. 가령 전차 한 대를 보더라도 그 개념을 처음 정립한 기획자, 설계를 완성한 기술자, 전술적인 용도로 써먹은 군인 가운데 누가 진짜 아버지란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현대 총기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존 브라우닝(John Moses Browning)은 누구도 그 위상에 토를 달 수 없는 절륜한 경지에 이른 진정한 장인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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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태어난 천재 건스미스, 현대 총기의 기준을 세우다

    1855년 미국 유타 오그던에서 총포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 브라우닝은 어려서부터 가업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필자는 여학생들 치마나 들추던 10살 무렵 창고에 돌아다니는 잉여 부품을 모아 작동 가능한 총기로 조립했고, 몇 년 후에는 목제만으로 실물 크기의 모형 대포까지 만들어냈다고. 손놀림이 얼마나 좋았는지 건스미스를 안 했으면 AV 배우로 대성했으리란 것이 학계 정설일 정도. 어쨌든 재주를 타고난 존 브라우닝은 20대 초반에 형제 셋과 함께 공장을 차려 직접 설계한 싱글샷 라이플을 팔기 시작했고, 이에 매료된 윈체스터 사장이 찾아와 독점 계약을 맺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그의 첫 흥행작이 되는 윈체스터 M1885로 존 브라우닝 사후 10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팔리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이것만 해도 무기의 역사에서 꽤 괜찮은 건스미스로 이름을 남겼겠지만 그에게는 그저 몸풀기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총기 발전사에서 존 브라우닝을 빼면 그다지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업적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앞서 M1885를 시작으로 오늘날 윈체스터하면 떠오르는 총을 거진 다 설계했는데 래버액션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강한 M1886부터 당시로선 혁신적인 상자형 탄창을 도입한 M1895, 훗날 펌프액션 샷건의 원형이 되는 M1897이 대표적이다. 래버액션 라이플이나 펌프액션 샷건의 경우 존 브라우닝이 최초로 창안한 것은 아니나 고질적인 결함을 해결했다는 의의가 있다. 덕분에 윈체스터산 총기는 날개 돋은 듯 팔려 나갔으며 사냥을 좋아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애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근시안적인 태도가 사업을 망치는 법. 존 브라우닝의 덕을 톡톡히 보고도 웃돈을 주긴 싫었던 윈체스터가 재계약을 거부함에 따라 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고 만다. 할 수 없이 존 브라우닝은 레밍턴으로 적을 옮겨 세계 최초의 반자동 샷건 M11을 만드나, 황당하게도 이번에는 계약을 맺은 사장이 급사하는 바람에 일이 흐지부지됐고. 다시금 거래처를 찾던 존 브라우닝은 벨기에 소규모 총포상이었던 FN과 손을 잡아 또 한번 역사에 길이 남을 명품을 쏟아내게 된다. 이 당시 그는 반자동 권총에 집중하여 M1900, M1908, M1910 등을 만들었는데,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준이라 한동안 유럽에서는 브라우닝이란 단어 자체가 권총을 뜻하는 은어로 쓰였다. 참고로 도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권총이 브라우닝 M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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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부터 걸프전까지, 미군과 숱한 전장을 넘은 M1911

    혼자 힘으로 FN을 유럽 최고의 총포상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킨 존 브라우닝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모국인 미국 총기 제작사 콜트와 협력하여 자신의 작품을 군에 납품하고자 했다. 타고난 재능으로 다른 나라에서 돈을 벌기보다 모국 장병들을 지켜주는 게 훨씬 영예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즈음 미군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리볼버의 느리고 번거로운 장전 방식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실제로 기관총에서 착안한 자동권총이 여기저기서 태동하는 와중이었다. 이에 존 브라우닝은 미국 최초의 탄창교체식 자동권총 콜트 M1900을 설계하여 군에 넘겼다. 리볼버 형태의 기존 제식 권총보다 훨씬 간편하고 안정적인 물건이었으니, 시들해진 군인들의 아랫도리를 발딱 세울 만한 섹시한 뉴페이스로 안성맞춤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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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존 브라우닝의 기대와 달리 미군은 콜트 M1900 제식 채용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필리핀 침공이 한창이던 미군은 마약을 잔뜩 들이키고 두려움을 잊은 채 돌격해오는 모로족 전사들 때문에 머리털이 빠질 지경이었다. 수풀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을 처치하려면 권총의 화력이 매우 강해야 했는데, M190038구경이라 대인저지력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 문제를 파악한 존 브라우닝은 즉각 45구경 자동권총 M1907을 제작했으며, 마찬가지로 구경을 넓혀온 스미스&웨슨, 루거, 웨브리 등과 군의 심사를 받았다. 이때 경쟁자들과 비교해보면 M1907만 현대 권총으로 보일 정도로 존 브라우닝의 설계는 시대를 앞서 나갔고, 화력까지 보강된 만큼 군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콜트 M1907은 최종적으로 미군의 품에 안겼다.

     

    콜트 M1907은 이후 약간의 개수를 거쳐 1911년 정식으로 미군 제식 채용되었고 이를 기념하여 명칭도 M1911로 변경됐다. 혹은 45구경인 점에 착안하여 콜트 45라고도 부른다. 깔끔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바디,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 단순하면선도 튼튼한 신뢰성, 45구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화력까지 그야말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완전체 자동권총. 덕분에 미군 병사들은 제식 채용 3년후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등 숱한 전장에서 M1911을 꼬나쥐었다. 비록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빗겨갈 수는 없어 1985년 베레타 92에게 미군 제식 권총 자리는 내주었지만, 여전히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총기로서 민간에서 방범, 사냥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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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전설, 제식 채용 107주년을 맞은 장인의 유산

    20세기 건스미스의 전설 존 브라우닝은 1920년경 FN과 함께 자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벨기에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6년을 지내다 향년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시대를 풍미한 장인의 유유산은 콜트 M1911을 필두로 지금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쓰이고 있으니. 무엇보다 동시대 작품들이 거진 어디 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거나 본래 형태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개량을 거쳐 쓰이는 반면, M1911은 그 모습 그대로 107년을 버텨왔다는 데서 그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근대 역사에 있어서 많은 이의 목숨을 간접적으로 앗아간 셈이 됐는데, 스스로도 전쟁에 염증이 났는지 말년에는 스포츠용 총기를 만드는데 소일했다고. 오늘날 올림픽 클레이 슈팅에 쓰이는 총기가 또 그의 작품에서 파생되었으니 여러모로 참 대단한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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